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자이 돌격 (문단 편집) ==== 일본군 ==== 당시 대학생은 고등 교육을 받은 중요한 인재였으므로 타 국가에서는 징병을 연기해 주거나, 징병하더라도 높은 교육수준이 필수가 아닌 소총병으로 배치하기보단 각자의 능력을 살려 제대로 된 군사 교육을 받도록 해서 장교로 임관시키거나, 후방 [[기행부대]]로 보내 행정병으로 배치하거나, 기술을 가르치거나 활용하게 해서 특기병으로 쓰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현대 우리나라 입장에선 의아할 수도 있는데,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높으면서 징병제가 겹쳐 징집병의 평균 학력이 높아져서 6개월 복무한 한국군 일병은 법대생인데 몇 년을 구르고 구른 미군 병장은 학력이 고졸인 식의 이상한 그림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군에서는 전쟁 말기에 치닫자 이런 대학생들까지도 징집하면서 [[카미카제]]나 이런 반자이 돌격용 병사로 뽑아 총알받이 노릇을 시켰다. 요즘이야 발길에 치이는 것이 대학생들이라 별 감흥이 없지만 2차 대전기에는 대학생은 지금의 석사 이상의 위상을 지닌 고학력자로서 전후 복구의 최일선에서 활약해야 할 인재들이었다. 이런 사정은 같은 시기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보다 박사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다. 당시 가난했던 조선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 학위를 받기란 거의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조선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받은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2차 대전 무렵엔 동양에서 대학교 졸업 학위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일본군은 다급한 마음에 한 줌도 안되는 병력을 더 모으고자 미래를 내다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당시 일본과 전쟁을 치룬 [[중화민국]]도 대학생은 아예 군 입대 자체를 불허했고, 1944년 [[대륙타통작전]] 등으로 전황이 크게 악화해도 자원자 한정으로 모병했지 무작정 총알받이 노릇을 시키지 않았다. 여기서 나타나는 최대 차이점은 바로 '동기'의 유무였다. 미국인에게는 선전포고도 없이 비겁하게 미국을 공격한 일본에 대한 보복 같은, 목숨 바쳐 싸울 만한 동기가 있었다. 반면 일본은 군부, 군부에 동조하는 기업이라면 몰라도, 평범한 일본인으로서, 자기 인생을 희생해가면서 조국에 몸 바쳐 싸울 이유가 하등 없었다. 중일전쟁이나 태평양 전쟁은 아무리 뭐라 해도 남의 일로 느껴졌고, 길어지는 전쟁 탓에 민간에서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당장 본국이나 국민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도 아닌데 목숨 바쳐 지킬 게 뭐가 있다고???'라는 식이었다. 아무리 전쟁 지도부가 적개심 유발 차원에서 [[귀축영미]] 타령을 해대도, 적어도 본토가 본격적으로 공격받기 시작하는 대전 말까지는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전에 미국과의 전쟁은 군부 내에서조차 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육군은 당시 중일전쟁 중이었기에 해군에서 [[양면전쟁|전선 하나 더 늘리면]] 감당이 안된다고 반대하던 실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개인의 동기부여인데 그걸 무시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추축국들은 이념논리를 위한 전쟁도 아닌, 전쟁을 위한 이념논리가 앞섰기에 일본은 고작 총에 새긴 국화 문양 똑바로 안 닦았다고 죽도록 패고, 독일은 전쟁에는 전혀 의미 없는 [[홀로코스트|유대인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면서]] 아군으로 포섭 가능한 사람들도 적으로 만들고 석유와 화학물질을 비롯한 최우선 순위의 물자를 최전선이 아니라 학살 수용소로 돌렸으며, 이탈리아는 아예 초반부터 선전포고만 때리고 전쟁에서 이길 의지가 있었는지도 궁금한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미국은 인적 관리 또한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과달카날 같은 생지옥에서 구를 만큼 구른 병사들은 휴가, 휴식 등의 보상도 확실하게 해 주고, 격전을 치른 장병들을 미국 본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 주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전선 후방에 있는 군 휴양 시설에라도 보내서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시켰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루는 미디어 매체들에도 미군들은 어떤 중요한 임무나 전투가 끝난 후에는 대위, 소령 같은 중대 및 대대장이 병사들에게 쉬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일본군은 휴가는커녕 부대 밖으로의 외출 및 외박도 제대로 없었고, 기껏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겠다고 허용한 게 [[음주]], [[마약]], [[위안부]] 같은 [[퇴폐]]적인 것들이었는데 이들은 도덕성 문제, 정치외교와 군사사회 및 문화적 악영향으로 생길 갖가지 문제를 차치하고 단순히 체력적 효율성만 따져도 오히려 심신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 군의 전력과 사기를 떨어뜨린다. 스트레스는 그 원인을 해결하거나 최소한 원인과 멀어져 휴식을 취해야 풀리는데 그걸 술, 마약, 성관계 같은 더 큰 자극으로 덮으려고만 하면 그 행위가 잦아질수록 몸에 부담을 주어 문제가 악화만 된다. 성관계도 예부터 알사람은 다 알 정도로 피로가 커 이슬람교의 일화엔 누군가가 "천국에서 많은 여자와 살면 오히려 힘들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니 무함마드는 대답으로 "힘도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 고위 장교들도 정상적인 절차 없이 부대 밖에 있는 온천이나 요릿집 등에서 마음껏 놀 수 있었다. [[무타구치 렌야]]는 장성급 장교임에도 작전이 끝날 때마다 허구한 날 부대 밖 유곽에나 놀러 다니는 판이었다. 싱가포르 점령 이후에 놀다가 영국군의 박격포탄이 날아와서 피하려다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현대에서 말하는 [[똥군기]], 즉 사람 말하는 거 하나하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억지를 부리며 따져가며 권위만으로 찍어 눌러 부당한 수단으로 통제하는 것은 미군에서는 '''정말 필요한 경우'''지, 일본군처럼 군기라는 명목만 들이대며 부끄러울 수준으로 불필요하게 병사들을 찍어 눌러 사기와 기강, 개개인의 상황판단 및 수행능력을 저해하는 통제를 하면 NCO든 장교든 위 아래로 모자란 사람 또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영향력이 적거나, 일본군처럼 그 정도가 심하면 처벌이 뒤따른다. 그리고 직무 외에는 어디까지나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생지옥을 함께 헤쳐나가며, 서로 마음 깊이 신뢰하는 전우로서 단결력과 협동능력이 다져진 미군과 비교할 때, 폭력과 억압으로 억지로 상명하복만을 세뇌한 일본군 부대의 실질적인 연대 의식, 사기, 투지 등이 높았을지 의문이다. 또한 군은 법과 절차가 무너지면 끝장남에도 병은 단순히 상급자에게 마음에 안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구타당해도 당연시 여기면서, 고위 장교는 [[무타구치 렌야|어떤 유명한 독립유공자]]의 경우 허구한 날 부대 밖 유곽에나 놀러 다니고, 놀랍게도 병력을 사병처럼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반역죄를 저질러도 어떤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이따위 수준의 고위 장교가 흔하니 군이 멀쩡히 돌아갈 리가 없었다. 결론으로 미군은 '시대가 깡을 길러준 인재들'이 자원입대하여 모이고, 이들을 나름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운영했던 반면 일본군은 줄타기 인사와 파벌 싸움이 판치고, 명분도 없이 징집한 장정들에게 각종 [[가혹행위]]를 가해 억지로 똥군기를 잡았을 뿐임을 대비해 본다면 미군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우월했음이 당연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